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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일까?

[스포츠PUB] 월드컵의 진실 --- 김현회 | '무자격자'를 '꼭두각시 감독'으로 앉힌 축구협회

2014 브라질 월드컵은 비리가 만연한 축구협회에 의해 임명된 꼭두각시 홍명보 감독과 축구협회로 인한 예견된 참사! 라는 내용~~ (출처 : http://sports.news.nate.com/view/20140630n10395?mid=s1001&isq=58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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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회 | '무자격자'를 '꼭두각시 감독'으로 앉힌 축구협회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한국은 굴욕적인 경기력에 머물며 결국 조별예선 탈락하고 말았다. 나는 홍명보 감독의 지도력과 선수 선발 과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엔트리를 구성해 자기 식구들 챙기기에만 급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홍명보 감독에게 책임이 있지만 그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건 명백한 대한축구협회의 잘못이다. 오늘은 ‘방패막이’ 홍명보 감독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홍명보 감독을 조종하고 있는 그 윗선에 대해 비판하고자 한다. 홍명보 감독만 죽어라 비판해서 바뀔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는 거대한 집단의 조종이 있었다. 홍명보 감독은 그저 그 맨 앞에 서 있는 ‘방패막이’일 뿐이다. 2005년부터 편법을 앞세워 홍명보 감독을 전략적으로 키워왔고 조광래 감독 경질 이후 시나리오대로 그를 대표팀 사령탑에 앉힌 것도 다 대한축구협회였다. 오늘은 이에 대해 조목조목 꼽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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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월드컵 당시 홍명보 코치가 가진 자격증으로는 중·고등학교 축구부 이상은 지도할 수 없었다. (사진=연합뉴스)

중·고등학교 감독 자격증으로 월드컵 나간 홍명보 코치

2005년 8월 당시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이사는 2급 지도자 강습회에 참가했다. 원래는 초등학교 및 유소년 축구교실에서 지도자 생활을 할 수 있는 3급 지도자 자격증을 따고 2년을 경과한 사람이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딸 수 있지만 아무런 지도자 자격증도 없던 홍명보 감독에게는 예외 조항이 있었다. 국내 프로경기에 100회 이상 출전한 경력이 있거나 A매치에 20회 이상 출전한 선수 출신은 3급 지도자 자격증이 없어도 바로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딸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됐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다른 여러 지도자들도 마찬가지 이유로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축구 행정가가 되겠다던 홍명보 협회 이사가 갑자기 지도자 자격증 수업을 받는다는 게 의아했지만 이런 자격증 하나 따놓는 걸로 의문을 가졌던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그가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따고 바로 한 달 뒤 협회의 꼼수가 드러났다.

2005년 9월 협회는 “홍명보를 성인대표팀 코치로 선임하겠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이제 막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딴 사람을 한국 축구 최고 레벨의 지도자로 선임하겠다는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아무런 자격증도 없었던 이가 불과 3주 만에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따고 성인 대표팀 코치로 간다는 건 초고속 승진이었다. 회사로 치면 이제 막 인턴 과정을 끝낸 뒤 부장으로 승진하는 셈이다. 더군다나 2급 지도자 자격증은 대학 및 실업, 프로 및 각급 대표팀을 지도할 수도 없는 아주 초보적인 자격증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축구팀만을 지도할 수 있는 자격증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지도해야 할 자격증 하나로 2006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 코치에 부임한다는 건 상식 밖의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이제 막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딴 ‘초보 코치’에 불과했다. 고등학교 팀은커녕 중학교 팀도 맞아본 경험이 없다. 참고로 대한축구협회 규정은 ‘대한축구협회 지도자 1급 자격증이나 아시아축구연맹 A급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한 자’만이 대표팀 지도자로 일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협회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내세웠다. “지휘권을 갖지 않는 보조 지도자 역할이기 때문에 홍명보 코치의 1급 자격증 취득 여부는 크게 문제될 게 없다.” 1급 지도자 자격증이 없는 건 물론이고 이제 막 지도자 수업 3주를 받은 게 전부인 이에게 전폭적인 힘을 실어줬다. 더군다나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딴 뒤 팀을 2년 이상 지도했거나 2급 지도자 자격증 시험 성적이 상위 5% 이내인 사람 중에 자격증 취득 1년이 넘은 이에게만 1급 지도자 자격증 취득 조건을 주기 때문에 홍명보 감독은 아무리 성적이 상위 5% 안에 들었다고 하더라도 1급 지도자 자격증을 딸 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2급 지도자 자격증 잉크도 마르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홍명보 감독 스스로 “실제 자격증이 없기 때문에 100%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라고 밝혔지만 그는 중·고등학교 선수들을 가르칠 수 있는 지도자 자격증을 딴 뒤 불과 한 달 만에 우리나라 모든 축구 지도자들의 꿈과 같은 성인대표팀을 지도할 수 있게 됐다. 무자격자가 버젓이 월드컵에서 대표팀 벤치에 앉아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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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감독은 불과 10개월 만에 1급 지도자 자격증을 딴 뒤 핌 베어벡 감독을 보좌하는 대표팀 수석코치에 임명됐다. 물론 이는 편법이었다. (사진=연합뉴스)

홍명보 위해 자격증 강습회 일정도 바꾼 협회

2006년 독일월드컵이 끝난 뒤 협회는 아드보카트 감독 후임으로 핌 베어벡 감독을 선임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홍명보 코치를 위해 편법을 썼다. 2005년 9월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땄던 홍명보 코치는 아직 자격증 취득 기간이 1년을 넘지 않은 상황이어서 여전히 1급 지도자 자격증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협회는 1년에 두 번 열리는 1급 지도자 강습회의 하반기 일정을 앞당겨 버렸다. “하반기 신청자가 많아서 인원배분 차원에서 일정을 앞당기기로 조정했다”고 했다. 베어벡호가 출범하는데 여전히 1급 지도자 자격증이 없어 무자격 논란에 휩싸여 있는 홍명보 코치를 구제하기 위해서였다. 하반기 지도자 강습회는 보통 10월이나 11월에 열리지만 홍명보 코치가 빨리 1급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게 하기 위해 그 일정을 7월로 당겨버렸고 홍명보 코치는 2006년 7월 협회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드디어 꿈에 그리던 1급 지도자 자격증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4~5년은 족히 걸리는 과정을 모두 생략한 채 아무런 지도자 자격증도 없던 이가 불과 10개월 만에 각급 대표팀까지 지도할 수 있는 1급 지도자 자격증을 딴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대표팀 수석코치에 임명됐다. 말 그대로 대표팀에서 감독 다음으로 힘을 보유한 막강한 자리까지 초고속 승진한 것이다. 당시 국내 축구 지도자들의 불만은 상당했다. 2006년 10월 한국축구지도자협의회가 조사한 자료를 살펴 보면 현장 지도자들이 얼마나 협회의 홍명보 코치 밀어주기에 불만을 가졌는지 잘 알 수 있다. 설문에 응답한 현직 지도자 중 78.9%인 266명이 “2급 자격증을 가진 홍명보 코치가 자격 규정을 위반하면서 독일월드컵 대표팀 코치에 선임된 것에 대해 잘못”이라고 답했고 “허용되어야 한다”고 답한 지도자는 7명 뿐이었다. 협회의 인사에 불만족스럽다는 의견을 낸 이들은 “협회가 능력과 자격을 무시한 채 지명도(128명), 측근(121명), 학연과 지연(71명), 무자격자(44명) 위주의 정실인사를 휘두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두가 협회와 홍명보 코치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하지만 협회는 이런 불만 섞인 목소리를 찍어 누르기에 바빴다. 그들에게는 오직 자신들의 입맛에 꼭 맞는 홍명보 코치를 밀어줄 생각 뿐이었다.

더군다나 협회는 편법으로 홍명보 감독이 1급 지도자 자격증을 얻자 더 노골적으로 밀어주기에 나섰다. 2009년 2월 홍명보 코치를 이집트에서 열리는 U-20 청소년월드컵을 앞두고 청소년 대표팀 감독으로 임명한 것이다. 이제껏 청소년 대표팀은커녕 유소년도 지도해 본 적 없는 무경험자를 전격적으로 청소년 대표팀 감독에 앉혔다. 이때 멤버가 윤석영과 김영권, 홍정호, 김보경, 구자철, 박종우, 김승규, 이범영 등 바로 지금 ‘홍명보의 아이들’이라 불리는 이들이다. 하지만 사실 이들 역시 홍명보 감독이 발굴해 내고 키워낸 선수들은 아니다. 이전 이 연령대 감독을 2년 동안 지내면서 조동현 감독이 키워놓은 선수들을 그대로 물려받았던 것 뿐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들은 ‘홍명보의 아이들’이 아닌 ‘조동현의 아이들’이다. 하지만 당시 홍명보 감독은 이 선수들을 그대로 이끌고 청소년 월드컵 8강에 진출한 뒤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갖춘 최고의 명장 반열에 올랐다. 단 한 번도 연령별 대표팀도 이끌어 본 적 없고 무자격 논란까지 있었던 사람이 협회의 치밀한 계획에 의해 명장으로 포장된 순간이었다. 이때부터 홍명보 감독에게 무자격 논란을 들이밀 수 없는 분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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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감독은 1급 지도자 자격증이 없는 서정원을 기술분석관이라는 직함으로 올림픽 대표팀에 데려왔다. (사진=연합뉴스)

편법 답습한 홍명보, 협회와 싸운 조광래

편법과 밀어주기식 인사로 최고 지도자 반열에 오른 홍명보 감독은 청소년 월드컵 8강이라는 성적을 낸 뒤 서정원을 자신의 팀으로 불러 들였다. 하지만 과거 홍명보 감독과 마찬가지로 서정원 역시 1급 지도자 자격증이 없었다. 유럽에서 은퇴한 뒤 현지에서 연수를 받으며 지도자 자격증을 딸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시나 협회로부터 편법을 전수받은 홍명보 감독은 그대로 이를 써먹었다. 기술분석관이라는 이름으로 서정원을 아시안게임 대표팀 스태프에 합류시킨 것이다. 1급 지도자 자격증이 없이 2급 지도자 자격증으로는 대표팀 코치라는 타이틀을 달 수 없던 그를 기술분석관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데려온 것이다. 서정원은 자격증이 없어 코치로 합류하지 못하고 전력 분석에 집중하다가 같은해 7월 1급 지도자 임시 자격증을 얻은 뒤 코치 자격으로 홍명보 감독을 옆에서 보좌하게 됐다. 그는 무려 4개월 동안이나 자격증이 없어 전력분석관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일단 먼저 자격도 없는 이를 대표팀에 불러다 놓고 그에 맞는 자격증 취득을 협회에서 도와준 것이다. 서정원은 당시 "1급 지도자 자격증을 따기 전까지 대학 선수들의 경기를 자주 보면서 새로운 재목을 발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2010년 7월 협회는 허정무 감독이 2010 남아공월드컵 이후 성인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자 K리그 경남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조광래 감독을 새롭게 성인 대표팀의 수장으로 앉혔다. 조광래 감독은 늘 협회와 대립하는 인물이었지만 허정무 감독이 대표팀 재계약 제의를 고사했고 그 누구도 대표팀 사령탑에 앉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협회는 어쩔 수 없이 K리그에서 가장 ‘핫’한 조광래 감독을 데려왔다. 당시 조광래 감독은 “내가 어렵게 키운 경남 선수들을 버릴 수 없다”고 했지만 결국 협회의 강력한 뜻에 반할 수 없었다. “경남과 대표팀 감독의 겸직을 허용해 달라”고 했지만 협회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대표팀만을 맡기를 원했고 결국 조광래 감독은 경남과 작별해야 했다. 그렇게 조광래 감독은 대표팀을 맡아 2011 아시안컵에서 비록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가능성을 보여줬다. 시행착오가 있었음에도 경남 시절 그가 보여준 매력적인 축구를 기억하는 이들은 “기다리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전적인 믿음을 보냈다.

하지만 조광래 감독은 홍명보 감독과 달랐다. 애초부터 협회 쪽에 서지도 않았고 툭하면 대놓고 협회에 자기 의사를 강하게 주장했다. 2011년에는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을 자기가 운영하는 성인 대표팀으로 대거 발탁하면서 정면으로 협회와 홍명보 감독에게 도전했다. 당시 조광래 감독은 협회의 비상식적인 선수 차출 규정에 반대했다. “대표팀 전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면 하급 대표팀에 내려보낼 수 있지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내려 보낼 수는 없다. 또한 기존 선수들과 젊은 선수들 간의 조화를 이번 두 경기를 통해 확인하지 못한다면 월드컵 예선전 때 곤욕을 치를 수 있다. 올림픽 대표팀, 청소년 대표팀 모두 중요하지만 A대표팀이 무너졌을 때는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최대한 신중하게 준비하면서 연구하고 노력하겠다는 계획이다. 나도 어린 선수들을 많이 데리고 있어봤지만 위로 올라가야 할 선수가 밑으로 내려가 더 좋은 결과를 만든 전례를 보지 못했다.” 감히 천하의 홍명보 감독과 협회에 도전하는 발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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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래 감독은 허정무 감독 뒤를 이어 대표팀 사령탑에 앉았다. (사진=연합뉴스)

협회에 도전한 조광래의 ‘밀실 해임’

협회로서는 골치가 아팠다. 말 잘 듣는 자기 사람을 쓰지 않은 결과였다. 조광래 감독은 협회의 순한 양이 아니었다. 그러자 협회는 대표팀 감독의 의견을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교통정리를 해버렸다. 이회택 기술위원장 겸 협회 부회장은 2011년 5월 기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지동원, 구자철, 김보경은 6월1일 올림픽팀에서 경기를 하고 홍정호, 김영권, 윤빛가람은 처음부터 대표팀에 합류한다. 조광래 감독이 말을 듣지 않아 기술위원회를 열어 일부 선수를 조정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이는 대표팀 감독의 선수 선발 권한을 명백히 무시한 처사였다. 여기에 대표선수 차출에 대해 협회가 정한 ‘각급 대표팀에 공통으로 속한 선수는 A대표팀에 먼저 배정한다’ 원칙을 스스로 깨는 발언이었다. 조광래 감독은 자기 자리를 걸고 싸웠다. 곧바로 협회의 결정에 반박했다. “기술위원회가 대표팀 감독 권한을 침해했다. 기술위원회의 독자적인 선수 선발 결정은 감독 고유 영역을 침해함은 물론 감독을 불신하거나 대표팀 전체를 곤경에 빠뜨릴 수 있는 행위로 생각한다. 국가대표팀 감독 자격으로 언론과 인터뷰할 때 협회의 사전 통제를 받아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축구대표팀 감독으로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겠다.”

조광래 감독은 이회택 기술위원장이 당시 선수 선발 명단을 집어 던지며 소리를 지르는 일까지 있다고 주장했다. 조광래 감독은 “이회택 위원장이 특정 선수를 뽑으라고 했는데 그 선수는 경기력이 정말 좋지 않아서 뽑지 않았더니 버럭 소리를 지르며 종이를 집어 던졌다”고 밝힌 바 있다. 말 잘 듣는 감독을 원했던 협회는 조광래 감독이 자신들의 의견을 전혀 따르지 않고 툭하면 이를 언론을 통해 공개하니 그가 눈엣 가시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조광래 감독은 이후 논란 끝에 경질 당했다. 조광래 감독은 대표팀 재임 당시 일본에 0-3으로 패하는 등 경기력에서도 문제점을 드러냈지만 경질 과정은 더 황당했다. 협회는 이회택 기술위원장의 뒤를 이은 황보관 기술위원장을 통해 일방적으로 조광래 감독에게 이 사실을 통보했다. 당시 해임 결정은 기술위원회도 열리지 않은 채 밀실에서 이뤄졌다는 논란이 여전히 남아 있다. 친협회 세력과 타협하지 않는 성품의 조광래 감독은 이후 협회가 잔여 연봉도 지급하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언론에 공개하며 협회와 대립했다.

‘순한 양’이 되길 거부했던 조광래 감독을 내친 협회는 차기 대표팀 감독 선임에 나섰다.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일단 협회의 뜻에 순순히 응하지 않았던 조광래 감독을 먼저 쳐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당시 ‘순한 양’ 홍명보 감독은 2012 런던올림픽 감독을 맡고 있어 빼올 수가 없었다. 수많은 외국인 감독이 유력 후보로 이름을 올렸고 협회가 실제로 접촉을 인정한 이들도 있었다. 압신 고트비를 비롯해 세뇰 귀네슈, 카를로스 둥가, 호세 페케르만, 에릭손,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 등은 하마평에 오르내리기도 했고 실제로 한국 대표팀 감독직에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도 협회는 국내 감독 선임에 대해 핑계를 댔다. “지금 한국 축구가 위기다. 이러다가는 월드컵 본선 진출도 장담할 수 없다. 빠른 시간 내에 선수단 파악이 가능한 국내 감독을 선임해야 한다.” 그래서 결국 다음 선택을 받은 게 바로 전북을 이끌던 최강희 감독이었다. 최강희 감독 역시 처음에는 “대표팀에 가지 않겠다. 전북에 남아 선수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지만 거대 조직인 협회의 뜻을 거역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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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택 전 기술위원장이 조광래 감독의 선수 선발에 월권을 행했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월드컵 참사’ 협회와 감독의 합작품

그는 결국 대표팀을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올려 놓고 다시 전북으로 돌아가겠다는 조건부 계약에 합의했다. 전북의 모기업인 현대자동차와 현대산업개발 회장이자 당시 프로축구연맹을 맡고 있는 정몽규 총재의 관계 때문에 그가 원치 않던 대표팀 제의를 거절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그렇게 최강희 감독은 독이 든 성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실망스러운 경기력 속에서도 가까스로 한국을 월드컵 본선 무대로 이끈 뒤 전북으로 돌아갔고 이 사이 홍명보 감독은 2012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면서 자신의 짧은 감독 경력 중 최고의 성적을 일궈냈다. 협회는 최강희 감독이 전북으로 돌아가자 여론의 눈치를 봤다. 여러 외국인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언론에 흘렸지만 결국 협회의 선택은 애초부터 홍명보 감독이었다. 조광래 감독 시절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 이를 선임했다가 낭패를 봤고 대표팀보다는 자신이 속한 클럽팀에 더 애정을 쏟는 감독을 거치고 나니 홍명보 감독이 더 절실했다. 편법으로 그 자리까지 앉혀줬고 누구보다도 협회의 말을 잘 듣는 감독이 바로 홍명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프로팀 한 번 맡아보지 않은 홍명보 감독은 그렇게 한국 축구 지도자로서는 최고의 자리인 성인 대표팀 감독이 됐다.

이번 월드컵 참사는 예고된 결과였다. 지도자 경험이라고 해봐야 무자격자 신분으로 월드컵 벤치에 앉았고 이후 연령별 대표팀 경력도 없이 청소년 대표팀을 맡았던 이가 월드컵 대표팀 감독이 됐으니 얼마나 대단한 지도력을 기대할 수 있었겠나. 홍명보 감독과 선수 시절부터 늘 비교됐던 황선홍 감독이 2003년 선수 은퇴 후 전남 코치를 역임하고 이후 2007년 부산아이파크 감독을 거쳐 2011년부터 포항을 맡아 FA컵과 K리그를 제패하는 등 차근차근 코스를 밟아가는 것과는 완벽히 대조적이다. 2006년 은퇴 후 FC서울 코치를 거쳐 정식 감독으로 승격해 리그 우승과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끈 최용수 감독의 행보 역시 홍명보 감독과는 비교 불가다. 지도자로서 바닥에서부터 힘든 시기를 거치고 그걸 이겨내는 과정 속에서 연륜이 쌓여야 하는데 홍명보 감독은 협회의 꼼수와 밀어주기로 그런 과정 없이 초고속 승진을 했다. 홍명보 감독에게는 프로리그 감독 경험도 없었고 힘든 상황을 극복하는 매뉴얼도 없었다.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협회의 특혜로 따낸 지도자 자격증 뿐이었다.

홍명보 감독만을 욕할 것도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과도한 욕심이 부른 참사라고 생각하지만 그 이전에는 협회라는 거대한 지원 세력이 있었다. 누구보다도 협회 말을 잘 듣는 ‘순한 양’이 필요했고 협회는 홍명보 감독을 그들의 꼭두각시로 만들었다. 4년 동안 감독이 세 번이나 바뀐 대표팀에 무슨 철학이 있고 무슨 경기력이 있겠나. 애당초 조광래 감독 같은 ‘야인’이 협회와 손을 잡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결과론적으로 협회가 만약 조광래 감독에게 4년이라는 시간을 믿고 맡겼다면 이런 참사는 없었을 것이다. 이번 월드컵 참패는 편법을 앞세워 경력도 없지만 말 잘 듣는 이를 대표팀 감독으로 추대한 협회, 그리고 그 편법으로 승승장구한 홍명보 감독이 함께 만들어낸 작품이다. 협회가 인맥을 앞세워 특정 감독을 이렇게도 밀어주는데 그 감독이 또 자기 식구들을 챙긴다고 해서 전혀 이상할 것도 없지 않은가. 감독 하나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그 감독을 조종하고 편법을 일삼는 윗선부터 개혁하지 않으면 이런 참사가 또 없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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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흘리는 한국 축구, 누가 이들을 울렸나. (사진=연합뉴스)

‘무자격자’를 ‘꼭두각시 감독’으로 만든 협회가 책임지길

협회는 이 절대적인 권력을 멈출 생각이 없다. 조광래 감독과 그렇게 대립하던 이회택 기술위원장이 사임하자 그의 충실한 ‘하수인’ 황보관 기술위원장이 임명됐고 이회택 기술위원장은 협회 부회장직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그는 기술위원장이라는 직함만 없을뿐 여전히 그 이상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더군다나 협회는 지금껏 문제가 생기면 ‘꼬리 자르기’에만 열중했다. 승부조작 사건 당시 숱한 선수들이 철퇴를 맞았지만 이 일에 책임진 수뇌부는 단 한 명도 없다. 이번 월드컵 참패 역시 표면적으로 보이는 몇 명에게만 철퇴를 가할 뿐 아마 협회 수뇌부 그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책임을 진다고 해도 그저 직함만 바꿔달 뿐 그들의 권력은 끝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자기 식구들 챙기기에만 바쁘고 편법을 일삼는 부패한 협회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대표팀이 개혁될 리 만무하다. 권력에 눈이 먼 ‘무자격자 감독’과 그런 감독을 ‘꼭두각시’로 이용하는 협회가 유지되는 한 우리는 또 4년 뒤 이런 참사를 보며 죄 없는 선수들만 욕하고 있을지 모른다. 벨기에전이 끝나고 흘린 손흥민의 뜨거운 눈물은 축구계 어른들이 만든 결과다.

김현회
前 스포츠서울닷컴 기자
前 풋볼위클리 축구기자
김현회